여덟 글자 중에서 왜 하필 이 두 글자인가
사주팔자는 년주, 월주, 일주, 시주라는 네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 태어난 날의 두 글자가 일주, 말 그대로 '날의 기둥'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제가 소싯적 사주를 배우던 시절엔 태어난 해를 중심으로 보는 방식이 유행이었는데, 송나라 무렵부터 명리학자들이 태어난 날의 글자를 '나'로 보기 시작했고, 그 방식이 천 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년주는 조상과 뿌리, 월주는 부모와 성장 환경, 시주는 자식과 말년을 담당합니다. 전부 '나를 둘러싼 것들'이죠. 오직 일주만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일주를 모르고 사주를 읽는 건, 주연 배우가 누군지 모른 채 드라마 줄거리부터 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을 시작할 때 항상 일주부터 봅니다.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의 이름부터 묻는 것과 같은 순서죠. 이 두 글자에 그대의 기본 성격, 가장 가까운 관계의 모양, 인생을 밀고 가는 기본 엔진이 담겨 있습니다.
일간 — 그대라는 주인공의 본체
일주의 위 글자를 일간(日干)이라고 부릅니다. 하늘의 기운 열 가지, 그러니까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 하나가 여기 앉습니다. 명리학에서 일간은 곧 나 자신입니다. 사주에 등장하는 나머지 일곱 글자가 전부 이 일간과의 관계로 해석되니, 말 그대로 모든 이야기의 기준점인 셈이죠.
열 가지 일간은 저마다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갑(甲)은 하늘로 쭉 뻗는 큰 나무, 을(乙)은 담장을 타고 오르는 덩굴, 병(丙)은 한낮의 태양, 정(丁)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입니다. 무(戊)는 큰 산, 기(己)는 곡식을 키우는 밭의 흙이고, 경(庚)은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무쇠, 신(辛)은 곱게 세공된 보석입니다. 임(壬)은 넓은 바다, 계(癸)는 조용히 스며드는 이슬비죠.
이 이미지만 알아도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월요일 아침 회의에서 아무도 입을 안 뗄 때 먼저 손을 드는 동료는 태양의 기운으로 사는 사람이고, 회의가 끝난 뒤 조용히 다가와 '아까 그 아이디어 괜찮던데요'라고 말해주는 동료는 이슬비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대의 일간이 무엇인지 알면, 그대가 세상에 힘을 쓰는 기본 방식이 보입니다.
일지 — 내가 평생 깔고 앉는 방석
일주의 아래 글자는 일지(日支)입니다. 땅의 기운 열두 가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중 하나가 앉는 자리죠. 저는 일지를 그대가 평생 깔고 앉는 방석이라고 부릅니다. 일간이 그대 자신이라면, 일지는 그대가 매일 돌아와 앉는 가장 가까운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명리학에서는 이 자리를 배우자궁, 즉 배우자의 자리로 봅니다. 인생에서 가장 가까이 붙어 지내는 사람이 앉는 자리라는 뜻이죠. 그래서 일지를 보면 그대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어떤 모습인지,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에 어떤 공기를 원하는 사람인지가 드러납니다. 배우자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그대의 기본 자세가 여기 적혀 있다는 뜻입니다.
일지의 오행이 일간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이 방석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경우의 수는 다섯 가지인데, 이 틀만 알아두시면 어떤 일주를 만나도 뼈대가 읽힙니다.
- 비겁 자리 — 일지가 일간과 같은 오행일 때
- 자기 자리에 자기 편이 앉아 있는 구조입니다. 주관과 자립심이 든든해서,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 식상 자리 — 일간이 일지를 생할 때
- 표현과 재능, 베풂의 기운 위에 앉은 구조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늘 뭔가를 만들어내고, 말과 손으로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 됩니다.
- 재성 자리 — 일간이 일지를 극할 때
- 현실 감각과 재물의 기운 위에 앉은 구조입니다. 계산이 빠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챙기는 힘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 관성 자리 — 일지가 일간을 극할 때
- 책임과 규율의 기운 위에 앉은 구조입니다.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는 사람이라, 어디서든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평을 듣습니다.
- 인성 자리 — 일지가 일간을 생할 때
- 후원과 공부, 수용의 기운이 아래에서 받쳐주는 구조입니다. 배우고 받아들이는 힘이 좋아 어른복과 학문운의 바탕이 됩니다.
60갑자, 60가지 주인공이 태어나는 이유
천간 열 개와 지지 열두 개가 정해진 순서로 짝을 지으면 예순 가지 조합이 나옵니다. 이것이 60갑자입니다. 달력의 날짜마다 이 예순 조합이 하나씩 돌아가며 배정되어 있어서, 그대가 태어난 날에도 어김없이 하나의 조합이 찍혀 있습니다. 그게 그대의 일주입니다.
같은 큰 나무라도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나무가 됩니다. 갑자(甲子)일주는 큰 나무가 차가운 샘물 위에 선 모습입니다. 자(子)의 수(水) 기운이 나무를 길러주는 인성 자리라, 지식을 빨아들이며 자라는 학자의 그림이죠. 반면 갑오(甲午)일주는 같은 나무가 한낮의 말(午) 위에 선 모습으로, 나무가 오(午)의 화(火) 기운을 피워 올리는 식상 자리입니다. 재능을 밖으로 태워 올리는 표현가의 그림이 됩니다.
병오(丙午)일주는 태양이 같은 불의 기운 위에 앉은 비겁 자리로, 정오의 태양처럼 자기 확신이 뚜렷한 주인공입니다. 계해(癸亥)일주는 이슬비가 큰 바다(亥) 위에 내리는 모습으로, 역시 같은 수(水) 기운의 비겁 자리인데 겉은 잔잔해도 속은 바다처럼 깊은 주인공이죠. 이렇게 예순 가지 조합은 저마다 다른 장면 하나씩을 품고 있습니다. 명리학자들이 60갑자 일주를 60가지 캐릭터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내 일주를 찾고, 사전을 펼치세요
그럼 내 일주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날짜마다 배정된 60갑자를 손으로 역산하는 건 도사인 저한테도 귀찮은 일입니다. 묘한문의 무료 만세력에 생년월일시를 넣으면 네 기둥이 바로 나오는데, 그중 '일'이라고 적힌 기둥의 두 글자를 읽으시면 됩니다. 위 글자가 그대의 본체, 아래 글자가 그대의 방석입니다.
일주를 찾으셨다면 이제 묘한문의 60갑자 일주 사전에서 그대의 편을 펼쳐보세요. 갑자일주부터 계해일주까지, 예순 가지 주인공의 성격과 연애, 직업과 처방을 한 편씩 풀어두었습니다. 오늘 익힌 일간의 이미지와 일지의 다섯 자리 틀을 갖고 읽으시면, 왜 그런 해석이 나오는지까지 눈에 들어올 겁니다.
천 년을 지켜보니, 자기 배역을 아는 배우는 남의 대본을 부러워하느라 시간을 쓰지 않더군요. 그대의 두 글자를 찾는 순간, 그대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1화가 훨씬 선명해집니다. 오늘 그 두 글자를 확인해보세요.
